지금까지 다양한 마네킹을 그려왔지만, 그것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마네킹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재의 대용물이면서 동시에 실재로서 존재하는 마네킹은 저에게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제 그림에서 마네킹은 실재와 허구,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교란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현대적 공간에서 인공과 자연,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생물 종의 하나처럼 현실 공간에서 서식하면서 상품을 매개로 인간과 소통하는 존재 같습니다. 그런데 감각기관이 생략된 마네킹들은 소통의 불가능성, 혹은 감각기관을 넘어선 소통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한마디로 저에게 마네킹은 '결정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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